순수한 공허함이란 고상하단 표현이 과하지 않은 것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은 미신과 별다르지 않아.
단지 앞서 어른이 된 이들이 말을 아끼고 있을 뿐.
아득한 공허함이 두려워서, 살아갈 길을 만들라는 권유만 반복하지.
우리가 평생 그 아무것도 없는 백지 위를 살아야 한다고 알려줄 책임은 없으니까.
BGM▷ Link
의외로 몸과 마음의 속도가 일치하는 때는 흔치 않습니다. 머릿속은 빙글빙글 도는데 두 손은 따라주지 않거나, 판단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움직이고 보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죠. 이런 극단적인 예시가 아니라도, 우리의 일상에는 엇박자가 만연합니다. 반복되는 생활에 순종하는 두 손과 다리. 고막과 홍채. 뼈와 살. 그동안 마음은 허공에 녹아 형태를 잃어가다 불현듯 제자리로 돌아오곤 합니다. 지금은 반대의 경우입니다. 몸이 마음을 따라 한곳에 머뭅니다.
교실 창문에서 미적지근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오후 4시경의 볕을 유심히 본 적 있습니까? 햇빛은 노을이 되기 전에 가장 게으릅니다. 대기는 여전히 푸르지만, 나태한 주황빛이 여기저기 쏟아져서 사방을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장소가 어디라도 상관없습니다.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 공원과 골목길, 그리고 학교도.
미이는 교실 책상에 앉아 손에 쥔 종이를 내려다봅니다. 이미 자율학습은 끝난 지 오래입니다. 아이는 주변 사물들의 게으름에 잠겨든 게 아닙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곤란한 일에 마침표를 찍어보려는 시도에 가까웠습니다.
《 진로희망 조사 설문지 》
※학교생활기록부 정정 금지 원칙에 따라 신중히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2 학년 A 반 이름: 미이
학년 진로희망 희망사유
2학년
이름과 학년을 제외한 칸은 공란 그대로입니다. 미이는 교실 한구석의 달력을 봅니다. 처음 설문지를 받은 날부터 거의 한 달 가까이 흘렀습니다. 사실, 굳이 달력을 보지 않더라도 날짜가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채무감이란 숫자로 채워진 빳빳한 인쇄용지보다 더 결벽적이니까요. 단순히 자신에게 보내는 기만적인 제스처일 뿐입니다. 미이는 드물게도 자기 자신에게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학교에 설문지를 제출하는거야 대학의 진학 정도를 고려해서 작성하면 별 탈은 없을겁니다. 다만 이것이 미이 본인의 문제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적당히 작성하기에는 이미 10대의 막바지에 서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10대의 끝에 다양한 시선을 보냅니다. 아직 어리다는 말과 곧 어른이 된다는 말을 동시에 들으면서도, 그 어느 쪽의 대우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10대를 예찬합니다. 괜히 청춘이라는 말이 있을까요. 영문을 알 수 없는 온갖 심술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고작 인간이 지나치는 특정한 시기에 불과한데도 ━당사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그 연령을 쉽게 입에 올립니다. 미이는 설문지의 빈 공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10대에 대한 유난스러운 시선의 원인을 꼽아봅니다.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자격을 얻지 못한 그대로, 공허함을 알아차리는 시기니까.
학생, 아이, 10대, 우리, 나, 그 어떠한 주어도 와닿지 않아서 빼둡니다. 아이들은 먼저 어른이 된 인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 시기를 목격할 수 없었으니까요. 목격의 부재는 어른들에게 익명성을 보장합니다. 그 뒤에 숨어서 무책임한 발언을 떠듭니다. 너무 어린아이는 알아듣지 못합니다만, 미이 정도의 나이에는 연장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차릴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모른 척 하고 싶더라도요. 공허함에 침식된 신선한 몸뚱이를 가진, 결정권이 제한된 인간이란 ━타인의 입장에서는 헤프게 떠들기 좋은 대상입니다.
흔하게 떠드는 10대의 고민, 청춘의 고뇌, 모든지 할 수 있는 시기의 보석 같은 방황은 일방적인 감상입니다. 당사자의 처지에서는 그저 일방적으로 수긍해야 하는 때입니다. 현재의 고민은 앞으로도 마주할 공허함이라는 사실을요.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의 일도 그렇습니다. 설문지 조사를 더 미뤄봤자 나중에 같은 문제로 고민할 겁니다.
다른 애들은 어떻게 정했을까.
남의 진로를 안다고 내 걸 정할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가 못 미더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 있습니다. 영리하고 다재다능한 아이.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인간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의 경우에 실패해서 풀죽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한계를 맞이해도, 빠르게 다른 경험 쌓을 수 있습니다. 행동을 통한 경험의 종류가 풍요로워집니다. 꼭 재능이 있어야만 다양한 경험을 쌓는 건 아니지만, 새로움에 도전할 용기를 주는 건 사실입니다. 타인의 지지나 응원이 없더라도 말입니다. 주체적으로 판단할 기둥이 생깁니다. 흔히 자립적인 아이가 된다고 말하던가요. 그렇다고 자립적인 아이가 불안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곤란합니다. 오히려 그들이 더 선명하게 불안을 인지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관찰할 기회가 조금 더 많을 테니까요. 물론 인간이라는 개체마다 차이가 있으므로 단적으로 서술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지금 교실에 남아있는 소녀의 총명함은 굳이 증명할 필요 없는 사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한 달 내내 가방 속에 들러붙은 악연과 결판을 내고 싶지만, 몸에 익은 생활감은 집에 돌아갈 시간이라며 이성을 독촉합니다. 교실 문을 닫으며 마지막으로 시선이 향한 곳은 창문입니다. 하늘은 노을이 되기 직전, 하얗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제 곧 세상이 붉게 물들 겁니다. 게으름에 삼켜지기 전에 문을 잠그고 복도로 나옵니다. 복도 창문으로 보이는 반대편의 하늘은 아직 푸르기만 합니다. 복도 특유의 냄새를 아십니까? 수돗물 냄새, 뻥 뚫린 공간 특유의 서늘함. 그늘진 청량함. 우리는 건물 속에서 살아갑니다만, 아무도 없는 학교만큼 공간에서 극단적인 정서가 느껴지는 경우는 드믑니다. 평소라면 선선함에 몸을 맡겨 귀가했을 텐데, 오늘은 이 고요함의 밀도가 버겁습니다. 숨을 쉬고 있는데도 가슴이 답답합니다. 계단에서 울리는 말간 자신의 발소리. 투명한 유리문 너머의 야외. 햇빛에 푹 익어버린 운동장.
미이는 걸음을 멈춥니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학교의 그늘에서 벗어납니다. 밖의 공기는 뜨겁겠죠. 세상에는 햇빛이 필요하지만, 이 온기는 그리 친절하지 않습니다. 견뎌내라고 종용하는 따가운 시선과 닮아있는 것.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잠시 망설이던 미이는 걸음을 돌려서 1층 복도로 다시 올라갑니다. 본관 후문을 지나면 도서관이 있습니다. 건물 그늘을 홀로 지납니다. 다소 쌀쌀하다 싶을 만큼 그림자. 그늘과 햇빛의 경계. 여기에 중간이란 없습니다. 어느 쪽도 안주할 수 없는 곳이지만 ━ 불안감보다 알고 있는 불편함을 택하기 마련이죠.
그늘의 짙은 답답함이 아이를 계속 짓누릅니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이 막중한 고요를 외면할 수 있을까요. 아이는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올라 가방을 끌어안습니다. 사람을 대신하지 못하는 사물의 부피. 까슬한 가방의 감촉이 팔에 닿습니다. 상념은 짧습니다. 미이는 홀로 도서관에 들어갑니다. 가장 인류다운 사물, 박제된 타인의 언어가 여기에 모여있습니다. 아이는 책장으로 다가갑니다. 손에 잡히는 책을 꺼내봅니다. 붙잡고 읽다가, 중간에 덮고 다른 책을 꺼내기를 서너 번 반복했습니다.
「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 칼세이건 」
...우리가 아는 모든 행성들이며 모든 혜성들은 태양의 휘황한 빛 속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가 이웃한 별들 중 일부를 보기에 충분한 축척을 갖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수많은 세계들의 거대한 집합 가운데서도 지극히 작고 보잘것없는 부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걸요.
좀 더 인간적인 이야기를 읽을까. 여행이나, 문화, 타지에 관한 것.
「 나의 사적인 그림━ 우지현 」
...네덜란드 남서부의 작은 마을 델프트를 걷다가 우연히 들어선 도자기 박물관에서 공간을 가득 메운 푸른빛 도자기를 보고 완전히 매료되었다. (...)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쓸모를 갖고 태어나는데 그것이 내게는 도자기였고 이 일을 지속하는 것이 세상에 대한 나의 마지막 임무"...
여행에서 열정 있는 노인을 만나셨구나. 하지만 지금 이런 자부심은 불편해.
차라리, 아예 공예에 관한 내용은 어떨까? 드라이플라워도 관심이 있는데.
「 꽃보다 드라이플라워━ 하우투드라이 꾸까 」
Q. 어느 계절에 가장 잘 마르나요?
굳이 고르라면 봄, 가을이에요. 습한 여름 장마철이나, 비가 많이 내리는 기간만 아니라면 어떤 계절이라도 괜찮아요.
지금은 아니네요. 이렇게 푹푹 찌는 걸 보니 내일은 틀림없이 비가 올 테니까.
두 눈이 건조해집니다. 드라이 플라워처럼 잘 마른 문장들. 박제된 언어를 계속 읽어서 시선이 체한 기분입니다. 아이는 눈을 감습니다. 쌍꺼풀 없는 눈매가 단정하게 내려앉으니, 온 사방이 정지합니다. 얄팍하게 가닥을 잡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몇 가지 부분만 추출해서, 그걸 크게 확대하는 방식으로 앞날을 정해버린다면 ━거기서 제외된 자신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건가요. 모두가 무언으로 답할테죠. 그냥, 버리고 가라.
원하지 않는걸. 자신에게 너무 무책임하잖아.
아이의 끝을 진정성 있게 헤아려본 적 있습니까? 감히 말하건대, 누군가는 그 시기의 공허함을 고상하다고 표현할 겁니다. 미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공허함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살아온 시간이 길어도 두려움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이 감각과 가장 처음 마주하는 때는━ 기억의 오염 없이 공백을 그대로 마주합니다. 받아들이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결국 광대한 백색 세계는 '자신이 해결할 문제'가 됩니다. 지성과 연륜을 끌어와도 그보다 진실하게 공허함을 응시할 수 있습니까?
이 설문지는 한동안 채워 질일이 없을겁니다. 더 나은 답변을 찾지 못했는걸요. 지금의 공란이야말로 자신의 마음과 같은 걸 어쩌겠습니까. 누군가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아이의 모습이야말로 무책임하다고 지적할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아이의 모든 삶을 목격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러니 아이는 본인을 가장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에게 고민할 시간을 조금 더 주기로 했습니다. 그게 평생을 함께할 삶의 공허함에 대한 마땅한 예의이니까.
하이님 커미션 신청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