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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커미션

2차지인 한정 글커미션

 

 

 

공지사항

- 작업의 저작권은 호롱( @HORONG_S / @HR_1_10 )에게 있습니다.

- 완성작은 제가 샘플로 쓰거나 SNS에 게시할 수 있습니다. 비공개를 원하시면 따로 문의 주세요.

- 커미션 대상은 1차 창작( 자캐, 커뮤, TRPG캐릭터 등 )으로 한정합니다.

 

- 커미션 비용은 4만원. 보통 여백 포함 4천자 조금 넘는 분량이 나옵니다. 작업기간은 최대 일주일입니다.

- 분량 및 가격에 대한 조율은 지양합니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분량에 맞춰서 글을 쓰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 같은 이유로, 컨디션에 따라 분량은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만 신청자분에게 추가금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 스토리텔링하듯 서술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문체가 취향을 탈 수 있으니 샘플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 쓰는 사람이 코즈믹호러에 익숙한 편이라 어두운 내용에서는 해당 요소가 두드러질 수 있습니다. 

- 보통 글과 함께 어울리는 곡을 골라드립니다. 큰 이유는 없고 제가 곡 찾는 걸 좋아합니다.

 

 

 

 

 

신청양식

1. 신청자분이 읽고 싶은 포인트

: 알려주시면 글 쓸 때 많은 도움이 됩니다.

 

2. 스토리의 흐름

: 상세하게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썰 풀 듯 적당히 쓰셔도 무관합니다. 필요한 부분은 제가 따로 질문드릴 수 있습니다.

 

3. 내용에 필요한 캐릭터의 특징

: 그냥 프로필 링크 주셔도 괜찮습니다. 혹은 이런 면이 부각되었으면 좋겠다~ 싶은 걸 적어주셔도 좋습니다.

 

4. 호칭과 말투 자료

: 등장하는 캐릭터끼리 서로를 부르는 호칭과 말투를 알려주세요.

 

5. 서사에서 중요했던 내용

: 역극 캡쳐본도 좋습니다.

 

6. 세계관

: 내용에 필요한 만큼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작성 후 @HORONG_S 계정의 DM으로 보내주세요.

2차 지인분께서는 신청하실 때 1차 지인의 아이디도 함께 적어주세요.

 

 

 

 

이하로는 커미션 샘플입니다.


 

 

 

 

 

 

 

『 사나운 폭풍우가 눈꽃으로 변하는 연금술을 알고 있나?

: 1차, 자캐의 과거 이야기 - 셰리님 리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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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것은 아주 긴 시간, 그리고 깊은 꿈.
무슨 말인지 난해한가? 쉽게 말해주지.
아주 긴 시간 동안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된다네.




 

 

 







들쑥날쑥한 잎사귀와 완고한 줄기들. 젖은 바위를 뒤덮은 이끼. 번잡한 갈녹색 덩쿨 속에 제 몸뚱이를 불리는 버섯들. 무섭도록 뻗은 나뭇가지 탓에 엉망으로 쪼개진 태양의 빛 조각들. 결벽적인 인간이라면, 분명 목격하는 것만으로 이 생명의 범람을 혐오했을 겁니다. 자연을 무질서한 것으로 정의했을 겁니다. 이 의견을 보는 이의 시각에 따른 문제라고 단언하고 싶진 않지만, 이 생물의 군집에는 그저 너무 많은 질서가 존재할 뿐입니다. 모든 것에 질서가 있으나, 그 가짓수가 지나치게 많다면 보는 이에게 혼란을 줄 수 있겠죠. 낯설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일은 흔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호기심을 따라 숲에 접근했습니다. 그들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가 있었겠죠. 연결된 존재란 유기체의 생존에 큰 관여를 합니다. 연결된 점의 소실이란 삶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는 사건입니다. 그런 연결된 점의 일부가 미지의 숲으로 나아간 셈입니다.

파악하기 어려운 질서들은 그 내막에 접근한 탐구자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려줬습니다. 얇은 빗줄기, 망막에 맺히는 푸름 하나. 문장은 단 하나도 없었으나, 그곳은 정보의 바다였습니다. 쉴 틈 없는 인식의 연속입니다. 우리의 눈은 고작 두 개고, 코와 귀, 손의 감촉도 단 한 사람의 몫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결국 탐구자들은 최후를 맞이합니다. 자신과 연결된 사랑하는 이들에게 돌아가기는커녕, 푸른 세계 속을 표류합니다. 녹음과의 연결, 존재의 엉켜버린 갈래들. 너무 많은 시간이 발생합니다. 우리의 한정된 육신이 견디지 못할 만큼의.

그런 숲 인근의 마을에서 아이가 실종됩니다. 그 아이가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숲이 아이를 잡아갔다. 불확실함이 불러오는 두려움의 단언일까요. 불만을 토로할 입이 없는 숲에 떠넘긴 체념일까요. 아이의 부모는 완전한 상실과 고통스러운 희망 중, 무엇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비탄에 잠긴 연극의 주연처럼— 절망안에 자신의 삶을 놓아줬습니다. 서사의 시작은 비극. 상투적인 상실, 상투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잔인한 고통.



그러나 이야기의 배경은 이곳이 아냐.



지저분한 규칙의 숲. 가장 복잡하고 난해한 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듯 작은 몸뚱이가 꿈틀거립니다. 노란 머리털은 물에 젖은 흙과 시든 잎사귀 따위가 얽혀있고, 말간 피부는 폭풍우의 묵직한 빗줄기에 구타당하여 벌겋게 상기되었습니다. 폭풍우에 붙잡혀 숲에 잡혀간 아이. 아름답고 총명한 어린 생명. 모두가 칭찬한 작은 인간.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던 아이가 기침과 함께 입에 고인 빗물을 뱉어냅니다. 조그만 손과 발은 움찔거리는 모습이란, 퉁퉁한 몸을 부풀리는 애벌레만도 못 하군요. 단정했을 의복은 형편없이 비에 젖어 본래의 색상을 잃었습니다. 단, 한 가지만은 여전했습니다. 아이의 눈. 총명함이 천둥처럼 번뜩이는 눈동자. 냉담한 존중으로 가득한 생명의 군집에서 그 붉은 눈동자만큼은 선명합니다.

 

 


아이는 몸을 일으킵니다. 본능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죽을듯한 허기와 갈증이 밀려옵니다. 자신이 얼마나 잠들었다거나, 무슨 일이 있었다던가— 사회적인 동물이라면 관성적으로 떠올릴 의문은 들지 않습니다. 아이는 갓 태어난 생명처럼 어설픈 걸음으로 숲을 탐색합니다. 달콤한 향이 나는 것, 싱그러운 것, 시큼한 것, 식물들은 제 종자를 퍼트리기 위해 다양한 과실을 자아냈고, 아이는 그것들을 삼키며 목숨을 이어갔습니다. 어떤 것은 먹으면 탈이 나거나 구역질이 날 만큼 끔찍한 맛이 났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얼굴을 찡그릴지언정, 그런 열매들을 간과하진 않았습니다. 아이는 그저 숲에서 생존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숲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잠잠한 날에는 난생 처음 보는 생경한 꽃들의 향기를 들이마셨습니다. 물의 향을 맡을 수 있을 만큼 예민해지고, 먹으면 위험한 것과 괜찮은 것을 기억했습니다. 숲에 갇혀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과 달리 아이는 숲에 적응했습니다. 작고 연약한 몸을 이끌고도 번잡한 푸른 요람에서 단잠에 빠져 꿈을 꿨습니다.

숲에서 처음 눈을 뜬 순간부터 자신에 대해 기억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이는 완전한 백지로 숲과 마주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번잡한 질서가 그에게 요람이 되고, 인식의 세밀함이 되고, 자극과 반응의 패턴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달그림자조차 없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아이는 숲의 어둠을 응시했습니다. 주변의 모든 녹색 유기체가 호흡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허파도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습니다. 바람이 옅게 불어옵니다. 잎사귀가 느리게 흔들립니다. 아이의 몸은 점차 이완되고, 심장은 느리게 뜁니다. 손을 내밀어봅니다. 허공을 움켜쥡니다. 그러나 이것은 허공이 아닙니다. 숲의 호흡이 작은 손안에 맴돌다가 차분히 흩어집니다.  그날부터 조금씩 아이의 몸에 녹음이 물들었습니다. 끝부터 녹빛으로 물든 머리카락. 그보다 더 눈에 띄는 변화는, 내부의 색채. 섭취와 생명의 경계선—입안에서 푸른색이 퍼집니다. 그가 푸른 것을 먹으며 생명을 이어갔음을 증명하듯. 그 무렵 아이의 모습은 제법 단정해졌습니다. 말간 물에 씻겨진 갓 태어난 핏덩이처럼 순수했습니다. 변화를 겪은 건 아이뿐만이 아닙니다.


폐에 한기가 차오르던 날, 숲에는 눈이 왔습니다. 번잡한 질서들이 하얀 악마에 뒤덮여 제 자취를 감춰갑니다. 태양의 빛을 조각내던 나뭇가지도 앙상하게 말라갑니다. 새카만 균열 같은 메마른 나무들을 지나, 아이는 나아갔습니다. 요람을 둘러싼 생명의 자락은 허물어졌습니다. 겨울 내내 숲의 안식이 이어질 겁니다. 아이는 백색 악몽을 가로지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걸음은 자연스러웠습니다. 탄생과 성장, 둥지로부터의 자립하는 생명의 흐름을 떠올립시다. 그의 행보도 같은 이치입니다. 하얀 눈길 위로 작은 발자국이 이어집니다. 첫눈이었습니다. 아이는 희뿌연 하늘이 내리는 눈꽃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더 멀리, 더 멀리. 더 멀리. 그 앞에는...

 

 



"여기 아이가 있어!"


이질적인 소음이 피부에 훅 밀려옵니다. 아이는 천천히 정면을 응시합니다. 여러 명의 사람무리가 아이 앞에 서 있습니다. 아이는 말없이 그들을 바라봅니다. 이질적인 순간입니다. 하지만 그 이질감은 존중받지 못합니다. 어느 비극의 결말을 내기 위해 억지로 이야기를 진행하듯, 아이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마을로 향했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완전한 상실과 고통스러운 희망의 선택에서 해방됩니다. 부모는 아이를 미친 사람처럼 끌어안습니다. 어떤 음절을 반복해서 발음합니다. 아이는 곧 발음이 자신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인지합니다. 총명한 붉은 눈에 두 사람의 모습이 담깁니다. 상실에 시선이 팔린 사람들은, 이 일을 두고 행복한 결말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빌어먹을 집어치워.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봅시다. 변해버린 아이의 모습에 부모는 끊임없이 의심했습니다. 이 아이가 정말로 내 아이가 맞는 건가. 어째서 초록색으로 물들고, 예전처럼 착하고 다정하지 않을까? 이는 아이에게 끔찍하고 참담한 경험일 테지만, 이 이야기를 들어줄 청중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이가 푸른 요람에서 지낸 시간은 삶이 되고, 아이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타인이 되었다고 말합니까? 우리는 이것을 변화한다고 말합니다. 아이는 여전히 아이지만, 다른 생명의 과정을 거쳤을 뿐입니다. 하지만 숲을 두려워했던, 세밀하고 광활한 질서를 이해할 수 없었던 인간들은 그 본질을 찾아낼 눈이 없었을 뿐입니다. 인식의 차이. 본질부터 요동치는 생명의 이름을 그들은 발음할 줄을 몰랐습니다. 이걸 인간적인 두려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이에게는 굳이 논할 가치가 없는 일입니다. 붉은 눈에 선명하게 맺힌 것은 폭풍우에서 쏟아진 물의 잔재일 뿐입니다. 그 오래된 빗방울이 세상 밖으로 나와, 바닥으로 떨어지고 이내 증발해 사라집니다. 아이는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저,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에피소드 비리디타스는 감았던 눈을 뜨고 창밖의 거센 폭설을 응시합니다. 이곳에서 눈이 내리는 건 그리 드문 일은 아닙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엽니다. 적막을 가르고 인간의 언어를 발음합니다. 그의 아득하고 광대한 규칙이 담긴 시간을 담아서.

"사나운 폭풍우가 눈꽃으로 변하는 연금술을 알고 있나? 필요한 것은 아주 긴 시간, 그리고 깊은 꿈."

그가 잠시 말을 멈춥니다. 창문 틈으로 차가운 바람이 파고듭니다. 폐에 시린 공기가 차오릅니다. 내다본 하늘은 하얗고, 고요한 잔악함을 품고 있습니다. 무색의 세계를 총명한 붉은 시선이 가로지릅니다.

 

 

 


"무슨 말인지 난해한가? 쉽게 말해주지."




더 멀리, 더 멀리. 더 멀리. 그 앞에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된다네."

 

 

 

 

 

 

 

 

 

 

 

 

『 포말에 부서진 조각은 돌고 돌아, 모래알 하나로 바닷가에 도달한다지

: 1차, 자캐의 과거와 현재의 마음, 관계캐들과의 서사 서술 - 홍시님 리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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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모래와 바다의 모래는 서로 전혀 달라.
아주 작은 알갱이지만, 그 모래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형질을 결정하지.
수많은 마찰. 그리고 소멸의 끝에 남겨진 조각.

사막과 바다. 전혀 다른 지역에서 떨어져 나간 이 작은 조각들이 마주치면 어떨까.
서로가 난해할까, 혹은 와닿을까.




 

 

 

 

 

 





책상 모서리에 걸려있던 꽃 그림자가 어느새 손등을 덮고 있습니다. 투스는 창가를 바라봅니다. 칼리가 선물한 알라만다가 화분 안에서 옅게 흔들렸습니다. 창틈으로 바닷바람이 들어온 탓이겠죠. 그는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책상에서 일어납니다. 읽어줄 사람을 잃은 서류는 짧은 팔락임이 끝나고 잠잠해집니다. 표면에 새겨진 사무적인 정보와 함께 남겨집니다.

화분 앞에 섭니다. 샛노란 다섯 개의 꽃잎은 언뜻 별을 닮기도 했습니다. 투스는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선물을 전해준 제 쌍둥이가 본인과 비슷한 꽃을 골라왔다고. 그게 의도적인 행동은 아니었을 테지만, 받는 사람으로서는 꽤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문득 별을 닮은 꽃이 칼리처럼 느껴졌습니다. 투스는 화분을 두 손으로 감싸 쥡니다. 칼리 대신, 그 꽃이 자신의 자리 곁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그리고 그 창가 너머에 광활한 수평선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 이외의 것에게 접촉하고, 반응하게 하는 근원이 있을까요. 존재로서의 어떤 교집합. 자신과 닮아있는 것. 밀려오는 푸른 파도와 부서지는 하얀 포말. 그 형태 그대로 굳어진 듯한 또렷한 색채의 마법사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창문을 여니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옵니다. 깊은 곳부터 밀려온 파도의 외침이 묵직하게 밀려왔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행성의 맥박이 울립니다.

투스는 일감을 두고 건물 밖으로 나옵니다. 주변 사람이 이 모습을 목격했다면 뜻밖으로 여겼을 테죠. 성실하다 못해 워커홀릭으로 여겨지는 평판이니까요. 하지만 그는 단순한 환기나 변덕으로 일을 놓은 건 아닙니다. 만약 충동이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충동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를 새롭게 새겨야 합니다. '깊은' 충동이 어떤 감정일지 상상하면서요.

푸른 마법사가 모래사장 위에 섭니다. 저 물결에서 그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이질적인 행보가 아닌 당연한 걸음입니다. 자신이 시작된 장소로 찾아가는 일에 굳이 시기를 따질 건 없습니다. 이제 이 파도와 포말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을 꼽아봅니다. 투스는 기나긴 시간에 덮여있던 자신의 관성에 따라 바다를 만나러 왔습니다.

 

 


아가미와 허파의 호흡. 손가락 사이의 얇은 피막과 붉게 달아오른 더운 피.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경계선이 그의 요람입니다. 그는 아가미가 아닌 허파로 첫 숨을 내쉬었습니다. 아가미로 호흡하고, 차가운 살결로 심해에 육신을 위탁할 가능성이 탄생과 함께 소멸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이라도, 어디에라도, 단 하나의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건 없다고 감히 말해봅니다. 그저 우리가 발견하지 못할 뿐입니다. 너무 작거나 추상적이어서, 난해해서, 하찮게 느껴져서, 혹은 두 손으로 잡을 수 없어서—하염없이 잃어버렸을 뿐입니다. 먼지 한 톨조차 별의 죽음을 증명합니다.

투스 몰로우 린드그렌은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입니다. 바다와 호흡할 가능성이 사멸한 때는 한순간의 섬광과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빛이 반짝였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빛은 아주 먼 곳에서, 지금이라는 말이 융통될 수 없는 때에 출발했습니다. 투스가 어떻게 느끼더라도 이미 따질 수 없는 가능성입니다. 생명의 연쇄가 그의 모습을 만들었고, 그의 심장을 뛰게 했습니다. 하지만 생명 너머의 근본에서 외칩니다. 나는 저곳과도 이어질 수 있었다고. 나는 바다와 하나일 수도 있었다고!

 

 


이토록 선명한 고동이 느껴지는데 어째서 하나가 될 수 없는 거야.
나는 당장 뛰어들고 싶어. 저 바다에 몸을 담그고 싶어.
허파에 물이 차오르더라도 도망가지 않을 거야.
괴로움의 눈물조차 바닷물에 섞여 존재를 잃는다 해도 나는 기꺼이 고통을 바칠 거야.
왜냐하면, 나는 푸름에서 왔고, 그 파도이기도 하니까.

 

 


어린 날의 그는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봤습니다. 맑고 하이얀 시선에, 푸름을 넘어선 빛을 일러준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쌍둥이인 칼리는 언제나 투스와 함께 했습니다. 투스 혼자였다면. 타인과 연결되지 않은 점 하나로 동떨어졌을까요. 심장보다 깊은 곳에서 울리는 고동을 따르다, 주변에서 고립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칼리는 투스에게 길잡이 별입니다. 고립 이외의 가능성을 일러주는 온화한 빛입니다.

물론, 투스는 노력해야 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는 일은 낯설었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가 그리하듯 사람들을 모방하고, 말투를 따라 했습니다. 그곳에는 푸름 대신 다른 색채와 온도가 가득했습니다. 투스는 파랑 이외의 감각을 익혀야 했습니다. 바닷물을 두 손으로 움켜쥘 수 있습니까? 액체는 억지로 잡는다고 멈춰서지 않습니다. 이는 물질의 이치에 어긋나는 시도입니다. 바다를 닮은 투스는 어떤 심정으로 사회에 적응했을까요. 투스는 두 손으로 자신을 움켜쥘 수 있어야 했습니다. 파도치는 순간을 강제로 굳히듯 어설픈 모습이 이어집니다. 불쾌한 감각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동떨어진 건 아닙니다. 시간을 들여서 가까이 봐야만 보이는 —어떤 섬세한 결이 있습니다. 낯선 사람들도, 결국 살아있는 생명입니다. 연결되고 마음이 있는 존재들. 별에서 태어난 것들. 점차 가닥이 좁혀집니다. 투스의 생명 너머의 고동이 평온해집니다. 마침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고. 이 세상에도 마음을 주고 싶다고.

그리하여, 이제는 파랑 이외의 색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그가 바닷물에 발을 담급니다. 어른이 된 마법사는 바다에서 무엇을 느낄까요. 투스는 자신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감정에 초조하게 쫓기던 아이들은 자라나면서 마음의 속도를 늦추는 법을 익히기도 합니다. 너무 빠르게 나아가는 마음은 잔상만 남아서, 자기 자신은 안에서 방향을 잃게 만드니까요. 투스는 성급하지 않게 자신의 결을 가다듬습니다. 한가지 생각에 도달합니다. 

'이제는 예전만큼 바다에 잠겨 사라지고 싶진 않아.'

마음 안에서 길을 잃진 않았지만, 가닥의 근원을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그는 바다를 고요하게 바라봅니다. 햇빛을 머금은 바다는 두 눈이 시릴 만큼 찬란합니다. 투명한 광원을 가득 머금고 풍부하게 일렁입니다. 이 광경에도 교집합이 있습니다. 그는 가느다란 결을 따라 올라가다가 아, 하고 작게 탄성을 내뱉습니다.




메흐르다드 파샤는 사막에서 온 아이였습니다. 햇살의 총애를 받아 금빛이 반짝이는 민트색 머리카락은 얕은 물결과 닮아있습니다. 붉은 열기를 띤 눈. 태양을 닮은 사람. 그의 출신은 사막에 있으나, 기원은 투스와 같습니다. 파도와 모래가 맞닿는 곳. 인간과 인어의 혼혈. 물론, 그것 때문에 서로가 특별하다고 할 순 없을 겁니다. 한 부분이 같을지라도, 거쳐온 시간은 완전히 다르니까요. 바다의 모래와 사막의 모래가 다른 물질인 것처럼.

그런데도 둘은 만났습니다. 호의를 나누고, 가르침을 줍니다. 심하게 다투고, 마음을 전하고, 이를 거절하고, 끝내 자신의 길을 갑니다. 서로가 난해했을까요. 와닿았을까요. 사람을 배워야 했던 투스에게 그 존재는 너무 많은 것을 남겨버렸습니다.

파도가 밀려옵니다. 하얀 포말이 해변까지 휩쓸고 온 모래알 하나처럼, 둘은 다시 만났습니다. 그 순간부터 현재에 이릅니다.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기나긴 감정을 마주합니다. 투스는 천천히 그에 대해 생각합니다.

 

 



나는 너에게 삶을 배웠어.
너는 나에게 미지를 읽었지.
나는 너에게 사랑을 느꼈어.
너는 나에게 세계를 찾았지.

 

우리는 이 관계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 없어.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해.

 


나는 이제 이 바다가 아니라도 괜찮아.
— 저 깊고 푸른 고동에 잠겨 사라질 수 없다고 해도.

 

 

내가 바라는 것은 다른 곳에 있어.
— 결국은 선택을 통해 만들어진 시간이 존재에게 진정한 교집합이 되어주는 것.


 

 


잃어버린 푸른 가능성이 그의 것이 될 수 없다 해도, 그 생명 너머의 상실이 투스의 모든 것이 될 이유는 없습니다. 모래알 하나로 우리는 또 다른 증명을 얻을 수 있으니까. 어쩌면 투스가 바다를 움켜쥐던 것, 세상에 애정을 느낄 수 있던 것, 그리고 사람을 사랑한 일은 하나의 맥락일지도 모릅니다. 태어날 때부터 멀어져 버린 바다를 그릴 만큼, 자신과 연결된 것의 무게를 하염없이 헤아려줄 수 있는...

그런 그가, 마음의 결론을 담아 한 이름을 발음합니다. 태양의 빛을 받아 찬란하게 일렁이는 물결을 눈에 새기며.

 

 



"메흐르다드 파샤."





내가 머물 바다는 너야.
찬란한 햇빛을 닮은, 나의 바다야.

 

 

 

 

 

 

너와 함께라면, 더 나은 곳은 없어.

















 

 

 


마지막 문장은 Rather Be - Clean Bandit의 가사를 인용했습니다.

 

 

 

 

 

 

 

『 세상을 부술 듯 쏟아지는 비에 우리는 침몰되었다

: 1차, 죽음이 그득한 자컾의 이야기 - 로셋님 리퀘스트

※살인, 범죄, 그로테스크한 표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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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당해 떠오른 시체는 한 구뿐.

살아남은 이는 슬픔에 섞여서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갔다.

 

 

 

 

 

 

 

 

 

 

 

 

 

 

흑백의 밤은 지저분한 색채를 잠식하여 도시 위로 쏟아집니다. 어둠에 윤곽이 깎인 건물들은 빛의 난사로 잃었던 진정한 민낯을 드러냅니다. 오직 형태만으로 주변을 구분하는 세계. 페이는 그늘진 방안에서 눈을 뜹니다. 생물이기에 지니는 안구의 번들거림마저 어딘가 적막한 그입니다. 몸을 일으키니 창백한 피 부위로 짧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립니다. 낮에 자고 밤에 깨어나는 것은 오랜 습관입니다.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적합한 때니까요. 색이 뇌의 허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그 허상이 게걸스럽게 날뛰어서, 우리 모두가 각자 다른 색을 읽어낸다면 어떨까요. 신호등의 파란불과 빨간불이 그 의미를 잃는다면— 그런 혼란의 세계에서도 페이는 완고한 자신의 형태로서 존재할 겁니다. 그리고 공포에 빠진 모든 이들을 지나치겠죠. 굳이 이런 상황이 아니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게 의미를 지니는 존재는 하나뿐입니다.

 

 

 

페이는 그 존재를 생각합니다. 언어를 내뱉는 죽은 자의 혀, 피에 적신 눈동자가 의도를 담아 그를 쳐다봅니다. 온기를 상실한 생명의 잔해에서 그는 어느 때보다도 온화한 감정을 느낍니다. 퍼스트 게이트. 페이는 그를 퍼스트라고 불렀습니다. 가장 공허하고 정적인 때, 페이는 퍼스트를 만났습니다. 의미 없으리라 생각한 시간이 지저분한 실타래처럼 얽힙니다. 그 가닥이 난폭하게 끊어질 때야 비로소 페이는 스스로가 자신을 지독하게 속여왔음을 알아차립니다. 퍼스트는 한차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페이는 그 생명의 종결을 지켜봤습니다. 올곧은 영혼의 죽음. 그에게 온전한 이해를 보내온 친구의 시체가 쓰러집니다. 총상에선 하염없이 피가 쏟아져 바닥을 더럽힙니다.

 

 

 

끊어진 가닥이 하나로 귀결된 것은. 퍼스트가 망령으로 살아 돌아온 이후의 일입니다. 페이는 돌아온 그를 자신의 모든 것으로 삼았습니다. 이 기이한 상황이 두 사람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진 않았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른 개체 없이—오직 둘만의 상호작용으로 시간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의문스러운 주제입니다만, 둘은 증명했습니다. 서로를 필요로 삼고, 잠겨 듭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납득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을 텐데."

 

"고집부리는 건가?"

 

 

 

 

관계의 침몰에 급류가 쏟아집니다. 페이는 퍼스트의 시선을 받아내다가 고개를 돌립니다. 상황 자체는 간단합니다.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순 있어도, 똑같은 삶을 살진 않습니다. 다른 자아에 대한 거부감은 필연적인 것. 상대에게 타협할 수 없다면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현재에 이르러, 페이는 방안에서 홀로 눈을 뜹니다.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 정적이 모래알처럼 쏟아집니다. 그는 거처 밖으로 나옵니다. 달조차 보이지 않는 밤, 페이는 홀연히 자취를 감춥니다.

 

 

 

 

 

 

 

 

 

 

딱 보름만의 일입니다. 페이의 실종을 알아차린 퍼스트가 굳은 표정으로 걸음을 재촉합니다. 태양을 맞이한 도시는 요란한 색상으로 물듭니다. 무언가를 숨긴 사람이 괜히 소란을 부리는 것과 비슷한 어수선함입니다. 꽉 막힌 도로를 가득 채운 차량과 각자의 목적지로 분주하게 걸어가는 인파를 지납니다. 그리하여 도달한 곳. 퍼스트는 지저분한 색채의 도시가 꼭꼭 감추려고 발악하던 치부를 들춰냅니다.

 

 

본래 하던 일의 영향인지, 이런 쪽의 감은 제법 정확했습니다. 퍼스트가 단단하게 잠긴 문을 발로 걷어찹니다. 거칠게 개방된 입구에서 익숙한 냄새가 훅 밀려옵니다. 그는 천천히 공간 안으로 들어섭니다. 바닥에 쓰러진 남성은 머리가 깨져서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퍼스트가 시체의 표정을 살핍니다. 크게 뜬 두 눈에는 공포가 박제되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세 걸음 더 지나갑니다. 이번 사람은 목과 몸이 분리된 상태였습니다. 잘린 머리는 크게 입을 벌린 채로 구석에 박혀있습니다. 적나라한 신체의 단면에서 눈을 돌립니다. 퍼스트는 그대로 멈추어 섭니다. 사람의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는 갈린 고깃덩어리가 온 바닥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 아수라장 너머를 응시합니다. 하얀 대리석 바닥에 찍힌 붉은 발자국 하나. 도시의 색채가 범람하여 감추려고 했던 살인사건의 전말.

 

 

 

 

이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라면 분명...

 

 

 

 

 

열려있는 창문에서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이것은 초대장입니다. 시체들은 게스트고, 주인공은 두 사람입니다. 스포트라이트가 퍼스트 위에서 쏟아집니다. 퍼스트는 입술을 깨물고 현장을 빠져나옵니다. 거짓말이 들통난 하늘은 이제 죄악을 인정하듯 붉게 물듭니다. 지독한 핏빛으로 타오르다가, 한순간에 꺼져버립니다. 퍼스트는 어둠을 가로질러 나아갑니다. 창백한 도시에 만월이 떠오릅니다. 달은 어둠을 배척하며 또렷하게 빛납니다. 한걸음, 한 걸음 나아갈수록 짙은 피 냄새가 밀려왔습니다. 퍼스트는 인상을 찡그리며 멈추어 섭니다. 죄악의 실체가 보름달을 등지고 모습을 드러냅니다.

 

 

 

 

 

"페이"

 

 

 

 

퍼스트가 나지막이 그 이름을 부릅니다. 참담한 광경이었습니다. 온 세상의 끔찍함을 긁어모은 듯한 잔인함과 지독한 냉담함이 공존합니다. 몇 명인지 셀 수조차 없는 시체들이 기괴하게 몸이 꺾여서는 산처럼 쌓여있습니다. 그 주변에 부산물처럼 널브러진 신체의 조각이 보입니다. 부러진 손가락, 찢긴 몸뚱이, 튀어나온 눈알, 달빛에 번들거리는 치아… 주체로서 생존할 수 없는 그들은 삶의 연속성을 상실합니다. 이제 그에게 질문해야 할 시간입니다. 그가 왜 이런 죄악을 쌓아 올렸는지에 대해서. 퍼스트가 순수한 의문을 담고 입을 엽니다.

 

 

 

 

"왜 이런 행동을 한 거지?"

 

 

 

 

원망도, 책망도 없습니다. 선량함을 지닌 사람으로서, 어째서 죄 없는 사람들을 죽였느냐고 따질 수는 없었습니다. 페이에게 퍼스트가 유일하듯, 퍼스트에게도 페이는 유일합니다. 죄를 감싸주진 않지만, 곁을 지켜주는 것. 퍼스트의 배려이자 동시에 애정입니다. 페이는 그런 퍼스트를 내려봅니다. 시선에 형태와 밀도가 있다면, 숨 막힐 정도로 응축된 감정을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광기, 혹은 집착과 닮아있는 것. 동시에 어떤 단어로도 완벽하게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감히 표현하기 끔찍하지만, 굳이 우리가 아는 단어로 그 감정을 나타낸다면 — '사랑'이었습니다.

 

 

 

 

"너를 만나기 위해서."

 

 

 

 

삶을 잃은 시체들은 그 존엄성을 박탈당합니다. 페이는 그들을 도구로써 사용했습니다. 이 흑백의 도시에 죄를 얹어, 엇나간 관계를 억지로 끌어당기기 위해서. 이제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 시체들에 다른 용무는 없습니다. 그는 쌓여있는 죄악의 증거를 밟고 내려옵니다. 페이가 퍼스트를 마주 봅니다. 손을 뻗습니다. 온기는 없으나 자신에게 어떤 따뜻함을 일러주는 존재에게.

 

 

 

 

 

페이, 그때 나를 만나서 그리도 만족스러웠나?

그게 아니라면 네가 그렇게 허망하게 당하진 않았을 텐데.

 

 

 

 

 

탄환이 페이의 심장을 파고듭니다. 살갗에서 혈액이 사납게 쏟아집니다. 창백한 피부 아래에도 생명이 있다는 걸 증명하듯 바닥을 붉게 더럽힙니다. 페이는 서서히 퍼스트의 품 안으로 쓰러집니다. 자신보다 작은 이에게 몸을 기대니, 휘청거리며 고개가 푹 수그러듭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명확하게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딱딱하게 멈춘 상태 그대로 만월을 맞이합니다.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이 괴물 같으니! 겁에 잔뜩 질린 사람 몇 명이 그리 외치며 도망치는 모습이 언뜻 비칩니다. 퍼스트가 떨리는 손으로 페이의 몸을 끌어안습니다. 함께 무너집니다. 물이 가득 차오른 컵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넘쳐버리듯 눈물이 새어 나옵니다. 페이는 그간 저지른 죄를 뒤집어쓴 것처럼 더럽혀졌습니다. 붉은 피가 창백한 뺨과 검은 머리카락을 적십니다. 자신이 죽인 시체들과 마찬가지로 고깃덩어리 하나로 전락합니다. 끝내 페이의 호흡이 멈춥니다. 퍼스트가 고개를 숙여 잔뜩 웅크립니다. 그제야 그는 목놓아 울음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누구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 타인의 삶을 침범했기에 돌려받은 절망. 그리고 죗값을 치르는 건 남겨진 사람입니다. 퍼스트는 온 사방이 고요에 물들 때까지 멈춰서 사체를 끌어안습니다. 기묘한 광경이었습니다. 이 많은 죽음 속에, 그 끝을 애도하고 슬퍼하는 사람은 한 명뿐입니다. 그리고 그가 사무치게 끌어 쥔 대상은 이 지옥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달이 저뭅니다. 흑백의 밤이 지나갑니다. 세계는 아침을 맞이합니다. 도시 한복판에 남은 것은 참담한 지옥, 그리고 선명한 혈흔들. 하지만 파티장에는 게스트만 남고, 주인공들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사람들은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러운 광경입니다. 곧이어 물방울이 허공에서 떨어집니다. 갑작스러운 빗줄기에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현장에서 멀어집니다. 핏자국이 쏟아지는 빗물에 씻겨 내려갑니다. 지독한 붉은 것이, 무의미한 것이, 전부...

 

 

 

 

 

 

 

 

 

 

 

세상을 부술 듯 쏟아지는 비에 우리는 침몰당하였다.

익사 당해 떠오른 시체는 한 구뿐.

살아남은 이는 슬픔에 섞여서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