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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긋남은 암시를 남긴 후 찾아온다.

 

 

삶의 주인이 그 암시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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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무관심을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죠. 날씨를 사람에게 빗댄다면 오늘이 딱 그런 날입니다. 구름의 양도, 습기도, 바람도, 안온하게 가라앉아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킹스크로스역을 오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많았습니다. 역의 아치 너머로 들어오는 환한 햇빛은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의 외곽에 공평하게 쏟아집니다.

 

플라시는 역의 세 번째 기둥 앞에 서서 고개를 숙입니다. 본래는 단정했던 긴 머리가 헝클어진 채로 시야를 가립니다. 그는 성의 없는 몸짓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깁니다. 사락, 하는 옅은 마찰음과 함께 편지를 빼냅니다. 기둥 아래의 틈에서 빼낸 편지는 투박한 장소에 위탁된 것 치고는 말끔했습니다. 단정한 종이의 질감. 만약 플라시가 가업을 이었다면, 언제까지나 그 감촉을 손끝에 새기고 살아갔을 터입니다. 그 미래가 자신에게 진실한 행복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이제 무의미하지만요.

 

 

 

"킹스크로스역에서만 편지를 주고받으면 언젠가 들통날 거야."

 

 

 

기둥 옆에 서 있던 프레바일이 말을 겁니다. 플라시는 시선만 돌려 자신의 사촌을 흘겨봅니다. 호의를 읽어낼 수 없는, 희미한 미소. 비아냥거림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예상대로 남자는 표정조차 바꾸지 않고 말을 이어갑니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모르겠는 걸.  거짓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거야?"

 

 

 

플라시는 입을 다뭅니다. 대화 사이의 정적에 역의 번잡함이 침범합니다. 오가는 사람들의 적당한 소음이 그의 존재감을 퇴색시켜줄지언정, 불편한 마음마저 모두 가져가 주진 않습니다. 흘려보낼 길이 없는 마음의 무게는 내면에서 부딪치고, 쏟아져서, 본래의 형태보다 텁텁한 모양새로 목구멍을 막습니다. 당신 때문이잖아요. 그 한마디는 결국 침묵 속에 수그러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진실로 결백한 사람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런 포괄적인 문장을 굳이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변덕스럽고, 무지해서—혹은 지나치게 다정해서—이런 부분을 간과하고 서로 마음을 나눕니다. 플라시는 그런 무지한 다정함에 숨어들어 거짓말을 이어가는 셈입니다. 세계 여행 중이라 부엉이로 편지를 받기 어렵다니요. 영국의 그늘에 숨어들어, 도둑질로 하루를 연명하는 범죄자에게 지나치게 호사로운 이야기군요. 같잖은 약속을 놓지 못해서, 친구들을 속이는 모습. 프레바일의 눈에는 우습기 충분했습니다. 플라시가 낮게 중얼거렸습니다.

 

 

 

"...신경 끄세요. 지팡이가 장식도 아니고, 이정도는 그리 수고롭지 않아요."

 

 

 

변명거리가 있다고 해서 자신의 꼴이 나아 보이진 않겠지만요. 플라시는 대답을 끝으로 바로 편지를 펼쳐서 내용을 확인합니다. 가라앉은 시선으로 내용을 읽는 그의 모습을 남자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입니다. 잠시 후, 플라시는 편지를 갈무리하여 품에 넣고는 걸음을 옮겼습니다. 부드럽게 퍼지는 햇빛이 제 존재를 비추고, 발아래 고여있는 그림자가 자신을 따라옵니다. 당연한 현상인데도 어딘가 낯설게 다가옵니다. 단지 그가 범죄자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모든 일은 좀 더 포괄적인 무관심의 연쇄입니다. 가문에서 방치한 사촌 한 명이 발간한 저서에 시선이 빼앗겨 그를 동경한 일. 그 남자가 가문에 수치스러운 존재로 낙인찍혔음에도—아무도 자신에게 진실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 그렇게 무지한 채로 꼬임에 넘어가고 가문에서 쫓겨난 것. 나열한 사건을 보이는 것 이상으로 헤아려봅니다.

 

플라시는 악의를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 체념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해할 위력조차 없기 마련입니다. 그는 주변 사람에게는 예민할지언정 자신의 시간에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저 얕게 흘러가는 물줄기와 비슷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본질은 흘러가는 것이 아닌 사건의 연쇄이며, 흐르고 있다고 믿어온 삶의 결은 그의 자각 없는 기울임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방향에 무관심했고, 가문이 그가 무얼 바라보는지에 무관심했고, 플라시를 밑바닥으로 꾀인 남자는 그의 존엄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리하여 어린 마법사 하나가 매장되는 일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플라시는 자신의 발아래 그림자를 낯설게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딱 본인만큼의 그늘. 세상에 존재하는 자신의 실체를 가시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현상 중 하나. 제 존재가 세상에 담긴 형식이 이질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이 시선 끝에서 천천히 밀려옵니다. 단정한 편지의 종이 냄새. 그 끝 향은 참담함으로 끝납니다.

 

 

 

무슨 거짓말을 해야 할까.

언제까지 속일 수 있을까.

나는 너희들을...

 

나는,

기만에 대한 죄책감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무관심하던 역내에 스산한 바람이 불어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휘날립니다. 건조한 것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게 역의 소음인지, 아니면 자신의 내면에서 나는 것인지는 분간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심정조차 동행인의 뻔뻔함에 흐려지고 맙니다. 능청스러운 그의 언변은 늘 거슬리기 마련이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지저분한 방식으로 상념을 방해받은 플라시가 프레바일을 쳐다봅니다. 남자가 턱을 매만지며 가벼운 어투로 말을 겁니다.

 

 

 

"제법 허기진걸. 그리고 보니 너 롤케이크 좋아하지 않아? 이번에는 베이커리를 털어보면 어떨까."

 

 

 

성가신 기색으로 그 이야기를 흘려듣던 플라시는 곧 딱딱한 동작으로 멈추어 섭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며, 심장이 빠르게 요동칩니다. 런던에는 델피나 선배님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베이커리가 있을 텐데. 선배의 아버지인 머글 남성과 그가 운영할 가게를 생각하고— 플라시는 답지 않게 조급해집니다.

 

 

 

"안 돼요."

 

 

 

사촌 동생의 날 선 목소리를 알아차렸는지 프레바일이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춥니다. 이 순간에 어떠한 다툼의 징조나, 강압적인 종용 따위는 없습니다. 그저 대화의 자연스러운 관성처럼, 그가 이어서 질문합니다.

 

 

 

"왜?"

"...그냥, 하지 말아요."

 

 

 

플라시가 사촌의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돌립니다. 물론 딱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남자는 그저 생각난 대로 이야기했을 뿐이고, 털어먹을 곳이 베이커리만 있는 것도 아닌걸요. 프레바일은 완전히 몸을 돌려 제 사촌 동생을 내려봅니다. 남자가 이 순간을 굳이 더 할애하는 이유는 다른 방향에 있습니다. 더 본질적이고, 냉담한 곳에.

 

 

 

"몸을 담글 우물이 없는데도, 밖에서 살아남는 개구리가 존재할 수 있을까?"

 

 

 

어두운 표정이던 플라시가 눈을 크게 뜨더니 고개를 들어 남자의 시선을 받아칩니다. 프레바일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갑니다. 승강장을 오가는 사람 중 누구도 그들을 신경쓰지 않는 역의 한 구석에서.

 

 

 

"애매하게 구는 건 도움 되지 않아. 호그와트에 마음을 묻어둔 어린아이는 여기서 못 견디지. 지금 네가 뭘 하고 있지?"

"......."

"넌 범죄자를 돕는 공범일 뿐이야."

 

 

 

죽음을 먹는 자들.

 

그 이름이 허파에, 뱃속에, 혈관에 깊게 꽂혀 요동치다가 뇌수를 타고 녹아듭니다. 어떤 절망감은 외부에서 밀려옵니다. 세상의 색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인지한 후에야 자신이 절망하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플라시의 세상은 서서히 회색으로 물들어가는 중이었습니다. 느리게 차오르는 우울감이 어린 마법사의 목을 조르기 직전, 남자가 도발하듯 속삭입니다.

 

 

 

"그런 어중간한 태도로 처신할 거면, 차라리 우즈빗에 있었던 때처럼 굴면 어때? 외면하고, 도망치는 거야."

 

 

 

플라시는 킹스크로스역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떨어지는 햇살이 그의 긴 머릿결을 쓸어줍니다. 건조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환한 세상은 느리게, 그리고 선명하게 말소됩니다. 죽음을 먹는 자가 온화한 소란으로 가득한 킹스크로스역을 벗어납니다. 어린 마법사는 자신의 그림자와 함께,  더럽혀진 우상을 따라갑니다. 영국의 가장 어둡고 깊은 골목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모든 외면당한 시간을 끌어안고 고여듭니다.

 

 

 

 

 


 

해리포터 기반커/바노님 리퀘스트입니다!